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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문 박은정 86학번 (2회) 졸업생 뉴스
보건관리학과 (health) 조회수:4798 210.121.137.7
2017-11-20 10:09:52

기사링크1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5&aid=0002773098&sid1=001

기사링크2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2774257

만 50세 박은정 아주대 의대 연구교수
20대 때 결혼, 임신으로 퇴사한 경단녀
자녀 친청엄마 시아버지 간병하다
41세에 박사 마치고 나노 독성 연구

세계 상위 1% 논문 쓴 그녀는 정식 교수 아닌 임시직 박사

세계 상위 1% 논문 쓴 그녀는 정식 교수 아닌 임시직 박사

유리천장에 갇힌 경력단절 중년 아줌마 임시직 박사님,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오른 아주대의대 박은정(50) 연구교수가 17일 수원 아주대에서 연구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흙수저 출신, 경력 단절 주부, 계약직 연구교수, 깨뜨려야 할 유리 천장….’

박은정(50) 아주대 의대 연구교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박 교수는 지난 15일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가 선정한 ‘2017년 연구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올랐다. 그는 이날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이상엽 KAIST 특훈교수 등 한국 최고 과학자 32인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HCR에 오른 이례적 기록이다. 특히 그가 주목받는 건 학계와 사회의 많은 모순과 폐단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서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HCR 시상식에서 박 교수가 “저는 경력단절 아줌마입니다. 이런 자리에 올 사람이 아닌데…”라며 쑥스러워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수는 연구자로 평생을 분화장 한 번 없이 지냈다. 독성학 연구자의 특성상 화장품과 실험실 내 독극물이 만나게 될 경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종택 기자

한국에서 ‘연구교수’란 대학 내 비정규직 연구자의 또 다른 말이다. 17일 오전 박 교수가 있는 수원 아주대를 찾아갔다. 그는 의과대학 건물 4층 뇌과학연구실 구석, 일반 책상의 반쪽도 되지 않는 좁은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전공은 ‘나노 독성학’.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나노 물질에 들어있는 독성을 연구하는 분야다. 뇌과학연구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실험 재료비를 직접 부담하는 조건으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동덕여대 건강관리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고교 시절 집안이 어려워 4년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성적보다 낮춰 대학에 지원했다. 원래 희망은 의대였지만, 대학도 전공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꿈은 너무 멀리 있었다. 4학년 말 한국전력에 별정직으로 입사했다. 그나마도 입사 1년도 못돼 첫아이를 임신하고 건강도 나빠지면서 퇴사해야 했다.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어린 아이가 눈에 밟혔다.

 
박 교수는 연구를 위한 '작은 탱크'같은 사람이다. 연구에 한 번 몰입하게 되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일주일씩 실험실에서 살기도 한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아주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오종택 기자

 

모교 약대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아이가 세 살이 지나서였다. 그나마도 석사과정 2년을 한 뒤 공부를 또 쉬어야 했다. 졸업하던 해 역경이 몰려왔다. 아이의 백혈병 진단에, 친정어머니까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개월 뒤엔 시아버지마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공부 대신 간병의 세월이 이어졌다.

박사과정에 다시 도전한 건 석사 졸업 후 8년이 지나고서다. 이번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박 교수를 도왔다. “지금 공부를 그만두면 더 이상 못한다. 그래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박 교수는 대답 대신 울기만 했다. 남편은 잠 시 뒤 “당신이 간병하느라 오래 고생했으니 이번엔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가족의 계속된 발병이 궁금했다. 생활 주변의 오염물질이 만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에서 ‘환경성 질환 원인 규명’을 주제로 나노 독성학을 연구했다. 연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전국의 학술대회와 대학 연구실을 뛰어다녔다.
그는 “충청도에서 제주도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험실 동료없이 쥐 세포 실험 같은 시간을 다투는 연구를 하느라 3박4일을 잠 한숨 자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렇게 박사과정을 3년 만에 마쳤다. SCI(국제 과학논문 색인)급 해외저널에 5편의 논문을 실었다. 모교에서 이례적 성과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명문대 박사도 아니고, 나이도 이미 마흔을 넘은 ‘애 딸린 아줌마’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학교에 연구원 신분으로 남아 연구를 계속했다.
 

박 교수는 경력단절과 여성 연구자, 중년, 비명문대 등 연구자로 성장하는데 어려운 불리한 조건을 많이 가졌지만, 연구를 향한 열정과 집념으로 겹겹의 허들을 넘어섰다. 오종택 기자

기회는 박사 졸업 3년 뒤인 2011년에 찾아왔다. 주변 지인의 소개로 한국연구재단의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우십’에 지원했다. 박사 취득 7년 미만의 비정규직 연구자 중 뛰어난 사람을 뽑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펠로우십을 따내고 연간 1억5000만원씩 5년간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아주대 의대 연구교수 자리를 얻게 된 것도 펠로우십 덕분이었다. 여전히 계약직 연구교수 신분이지만, 어느새 그의 논문들이 편당 400~500회 이상 피인용 될 정도로 세계 독성학 연구자들 사이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2015년 말에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주는 ‘지식창조대상 장관상’을 받았다. 2016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오른 것은 그 결과물이었다.

경력단절 비정규직 연구교수 신분인 박 교수의 총 논문 수는 SCI급만 65건, 국내 저널을 합치면 85건에 이른다. 논문을 많이 내던 해에는 한 해 16편까지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스펙’에도 국내 대학들은 박 교수를 외면했다. 논문실적은 뛰어나지만 어느새 나이 쉰이 된 비명문대 출신 ‘경력단절녀’ 박사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서도 대학평가가 일반화된 요즘이라, 박 교수와 같은 ‘고 스펙’의 학자가 들어오면, 학교 순위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학과 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교수들이 나이 든 사람을 후배 교수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국내 학계의 풍토가 박 교수를 거부했다.
 
박 교수의 책상 겸 연구실은 초미니다. 아주대 의대 뇌과학연구실 구석에 일반 책상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듯한 면적에 자리잡고 있다. 오종택 기자

좁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그래도 환하게 웃었다.
“뭐라 그래도 저는 이렇게 연구하는 게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하면 비웃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가 노벨상 한 번 받아볼게요.”
 
 
 

수원=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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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교수, 연구전담 제안받아
박 교수 키운 ‘비정규직 펠로십’
정부, 폐지 않고 계속 유지키로

세계 1% 연구자 뽑힌 임시직 박사, KAIST 정년보장 교수 된다

박은정
지난 15일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로이터)에서 선정한 ‘2017년 연구 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올라 화제가 됐던 박은정(50·사진) 아주대 의대 연구교수가 KAIST의 정년보장 연구전담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중앙일보 11월 18일자 2면)

KAIST 고위 관계자는 21일 “박 교수에게 영년직 리서치펠로(전임연구원) 자리를 제의했다”고 밝혔다. 영년직 리서치펠로가 되면 다른 연구교수들을 직접 고용해 함께 일할 수도 있고, 학생들을 연구원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 이 관계자는 “고용이 확정되면 교수에 준하는 대우와 함께 은퇴할 때까지 중단 없이 근무할 수 있게 된다”며 “본인이 원할 경우 학과 동의 전제하에 교수로서 활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가 정식 채용되려면 교내 인사위원회 등 기존의 KAIST 임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초 KAIST는 정식 교수를 제안했지만 “국내 최고 대학의 교수진과 학생 앞에 서기가 두렵다”며 박 교수가 이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KAIST는 연구전담 영년직 교수로 수정 제안했다.

영년직 연구원(교수)이란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 공헌한 연구원의 정년을 보장,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정부 산하 출연연에서는 영년직 연구원이 있지만 KAIST는 지금까지 영년직 연구교수가 없었다. 대학에서 영년직이란 원래 테뉴어(정년보장)를 받은 교수에게만 붙이는 표현이다.

박 교수는 경력단절 여성 연구자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결혼과 임신으로 1년 만에 퇴사했다. 3년 뒤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 갔지만 모친의 사망과 시아버지의 발병으로 병간호를 하느라 8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는 2005년에야 박사 과정에 도전해 3년 만인 41세에 학위를 마쳤다. 하지만 대학 등 제도권은 비명문대 출신에 경력단절 여성 학자인 박 교수를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연구교수 신분으로 여러 대학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이 와중에서도 독성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실적을 올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올랐다.

한편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신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폐지 수순에 들어갔던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십’도 박 교수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 후 되살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십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위한 연구개발(R&D) 프로그램으로, 2011년부터 매년 10~20명의 우수 비정규직 연구자를 선발해 1인당 연간 1억3000만원씩 5년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박 교수는 제도 시행 첫해인 2011년 최연장자로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십에 선발돼 이를 바탕으로 독성학 연구에서 세계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비정규직 연구자로서 힘들게 살아온 제게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십은 인생 사다리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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